운현궁 답사하며
정숙영(2009.09.23)
-창덕궁 돈화문
: 창덕궁 돈화문 앞 큰 길에 송학선 의사 비석을 보았다. 송학선이라는 분의 이름을 처음들었다. 순종황제의 죽음과 더불어 일본
압제에 복수의 칼을 들었던 분, 계획했던 일이 실패하고, 일본 관리 2명이 죽어지만,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고 하니, 개인 을 위한 행동이 아닌, 나를 희생하며, 민족을 위해 한몸을 던졌던 분, 외로이 비석만이 남았지만, 이땅에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내 조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께 또 한번 고개숙여 묵념을 드려야 겠습니다.
-현대사옥
옛 관상감 터 라고 알 수 있는 한 가지 ,관천대만이 현대사옥 빌딩앞에 자랑스럽게 서 있다. 마치 관상감이 있던 명당에 우리 현대가 오늘날, 자리하고 있음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헌법재판소: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 집행된 곳으로 tv뉴스에서 방송으로 자주나오던 곳.
(홍영식의 집터)
:영의정 까지 지낸 아버지를 두었던 대단한 집안의 아들이 뭐가 부족해서 갑신정변을 일으켰을까?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지만 너무나도 큰 피해을 입어야만 했다. 실패 후에 일어날 일도 생각못하진 않았을텐데,
집안의 몰락과 더불어 홍영식의 집터도 그 이후에 광혜원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박규수의 집터)
근대 개혁의 시작을 열고자 했던 갑신정변의 주역들의 집터가 안국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의 헌법재판소자리에 박규수의 집, 사랑방에 모여서 역관의 중인이었던 유홍기와 오경석이 청을 통해 들어온 서양 과학문물과 책을 통해 개화 사상이 흡수 퍼지게 된다. 그렇게 하여서 청년 지식인 행동파,즉 급진개화파의 사상적 배경이 나오게 만든 산파역할을 했던곳이었다. 이곳에 서니 비록 100여년이 흘렀지만 그 때의 개화파 인사들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계획했던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고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었지만, 갑신정변이 성공 했더라면, 지금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땠을지도 궁금해지면서, 아쉬운 마음과 함께 이곳에서 발길을 옮겼다.
(재동 백송)
육백년인가 되었다던 하얀 소나무는 여기서 처음 보았다. 그 위용이 넘 멋쩌서, 절로 고개가 끄덕거린다.
그 옆으로 헌법재판소의 법의 정의와 평등을 말해주는 저울을 든 한국인의 얼굴을 한 남자 청동 조각을 볼 수 있었다.
-정독도서관
:최초 관립중등학교이며, 명문고로써 명성이 자자하던 경기고가 자리했던 곳.
(종친부 가 창덕궁의 동문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와 있었는데, 이 전각도 외로이 홀로 떨어져 있고, 사람들의 관심밖에 놓여있는것 같아, 가슴이 아펐다. 그 앞을 지나 가면, 김옥균 집터였다는 팻말을 볼 수 있었다.
-천도교 대교당
1920년대 만들어 졌는데, 독일인이 설계했다고 한다. 명동성당과 조선총독부를 그당시 서울의 3대 서양식 건물로 손꼽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때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이곳에서 애국계몽을 위해 강연회가 열렸다고 하더니, 우리 어릴적초등학교강당과 흡사한 분위가 향수를 일으킨다. 내가 다녔던 전라도 광주에 있었던 수창초등학교도 일제 강점기 1910년도 이후에 지어졌는데, 높은 연단을 보니 가야금 병창으로 나갔던 학예회가 떠올랐다.
-인사동 골목
(경인미술관)
:철종의 사위였던 박영효의 집터였음을 짐작되는 곳. 궁이라고 불리우며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꾸미기위해 눈을 피해 이곳에서 모여 모의했다고 한다. 수신사 활동중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처음 태극기를 만들어 국기로 사용한 사람, 갑신정변 실패후 일본으로 망명한후 갑오개혁으로 다시 돌아온후 반역음모 사건으로 다시 일본으로 망명되고 또 돌아오나, 고종퇴위 반대로 일본에 미움을 사서 제주도 유배되나. 일제강점기때 친일로 돌아섰다. 지금은 전통 문양, 자수, 조각보, 공예,도자기등을 전시하면서, 팔기도 하는 곳이며, 이곳 정원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서 우린 벤치에 앉아서 쉬어갔다.
-운현궁
해설사 할아버지의 구수한 설명, 음양의 조화로 만들어낸 전통 한옥 건축 양식과 태극기 문양의 건곤감리 4괘와 태극을 설명하며,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이 별개가 아닌,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낸 우리 전통문화가 가지는 우수성, 오늘날의 과학으로 설명하더라도 더욱 지혜가 넘치는 조상들의 지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언젠가는 주역을 꼭 공부해서 만물의 생사소멸의 원리를 알아보고픈 호기심이 생겼다. 해설사 할아버지 덕분에.......
운현궁의 전각에서 흥선대원군 권력의 흥망성쇠가 이 전각과 함께 오늘에 이렀다. 우리껏이 자꾸 없어지다는 생각과 함께, 운현궁 행랑마당에서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위로 현대사옥, 삼성래미안 등 대기업과 자본을의힘으로 자츰 잠식당하는 운현궁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언제가 덕성여대에서도 양관을 헐고자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개인에게 팔린 전각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서울시에서 운영되는 지금의 운현궁이라도 잘 보전되길 빌어봤다.
-우정총국
우정국 낙성식에 맞추어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천하와 함께 개화파 인사의 망명과 죽음.. 우정국 전각은 전시관으로 쓰이는데, 그 당시 집배원의 의상과 대한제국에서 발행한 우표등을 볼 수 있었다.
우정국 전각뒤에 민영익 동상을 볼 수 있었다.
하루동안 갑신정변의 주역이 걸어온 곳으로 이동하면서, 그들이 생각한 개혁,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나라는 어떤모습이었을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